2016/07/29
아마도 석사 때 구입했던 카드지갑.
레자 주제에 이건 뭐가 닳지도 않아. 찢어지지도 않아. 처음부터 색상이 썩 마음에 들지는 않았는데 본의 아니게 8년을 사용했다. 그런데 문득 너무 저렴해보여서 부끄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건은 멀쩡하지만 이 물건이 내 에너지를 잡아먹는다면 아웃.
그래도 그동안 고마웠어, 안녕!
그런 후에 두달 전부터 눈여겨보고 있던 제품을 주문했다. 동물보호를 위해 가죽을 사용하지 않으면 좋겠지만 역시 가죽은 멋져. 😎 부들부들하고 디자인도 로고를 빼고 만들어달라고 부탁했더니 이렇게 심플할 수가. 색상, 촉감, 사용감, 두께감, 모두 마음에 쏙 든다. 꼭 필요에 의해 구입했기 때문에 더 소중하게 사용중이다.
* TMI: 2024년 글을 쓰는 현재 햇수로 9년차인데 아직도 잘 쓰고 있고 있다. 가죽이라 세월에 따라 낡아가는 느낌도 멋스러워 쓸수록 점점 더 마음에 든다.
3만 5천원, 소가죽, 와나크래프트.
닥터우즈의 물비누와 무인양품의 심플한 용기.
생분해 친환경 물비누를 사용하면 환경에도 도움이 되고 피부에도 순하니 개이득이라 생각했으나, 이 물비누는 사용감이 정말 좋지 않고 더 큰 문제는 쓸수록 피부가 안좋아진다. 세정력은 충분한 것 같으나 화장은 충분히 지우지 못해 뾰루지가 계속 나서 결국 이별하기로 했다.
암튼 계면활성제 듬뿍 들어간 온더바디를 반년만에 영접하니 하아... 이것은 천국?? 향기롭고 매끌매끌한 것이 샤워할 맛 난다...ㅎ 그래, 남 따라할 필요 있나. 내게 잘 맞는 제품이 명품이고 그런 제품을 쓰는 것이 심플한 삶이다.
2년 사용한 휴대폰이 지리산 물먹고 사망했다. 이 핸드폰은 사용하면서 액정 수리를 4번이나 했고 카메라도 망가져서 교체해야 했지만 바꾸기 보다는 수리해서 사용했다. 지리산 폭우에 먹통이 되어버렸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다시 AS 센터를 방문하다니 어찌보면 전자 기기일지라도 징한 인연이다. 결국 회생불가여서 어쩔 수 없었지만 말이다.
2년동안 고마웠어, 험하게 써서 미안했다. 안녕...!
그런 물건이 있다. 가격은 얼마 안되지만 날이면 날마다 마르고 닳도록 쓰는 물건. 가격은 중요하지 않은거야. 얼마나 나와 잘 맞느냐 하는거지. 사람도 마찬가지이겠지.
공짜로 얻은 담요가 겨울 내내 빨아서 덮고 깔고 베고 하다가 사망 직전에 블라인드로 새생명을 얻었다. 좀 웃기긴한데 생각보다 햇볕을 잘 가려줘서 너무 고맙게 잘 사용중이다.
미니멀 라이프를 하며 비우기를 지속하다보니 결국에는 나 자신만 덩그러니 남았다. 물건을 비웠을 뿐인데 가치관이 바뀌었고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려 노력하게 되었다. 아직 갈 길이 멀지만 최소한 스스로를 있는 그대로 인지하게 되었다는 것은 내게는 큰 성과인 것 같다. 완벽하지 않은 지금의 모습도 나라고 생각하니 어쩐지 이것저것 도전해보고 싶어졌고 용서를 구하지 않고 끝내버린 일들에 대해 용서를 구할 수 있는 용기도 생겼다.
어떤 것이 내게 중요한 물건인지 이제는 아니까 버리지 않는다고 해서 더 쌓이지도 않는다. 가치관이 변하니 특별히 노력하지 않아도 그렇게 되는 거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