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에서 하룻밤, 도봉서당 연어재 후기
경주 서악동에 있는 도봉서당은 조선 중기의 문신 황정의 학덕과 효행을 기리기 위해 건립된 재실(무덤이나 사당 옆에 제사를 지내기 위해 지은 집)이었다. 원래 1545년 추보재라는 이름으로 건립되었다가 세월에 따라 많이 훼손되어, 이를 안타깝게 여긴 황정의 후손들이 1915년 추보재가 있던 자리에 도봉서당을 중건한 것이 지금에 이른다. 2006년 2월 경상북도 문화재 제497호로 지정되었다.
도봉서당은 김유신 장군의 누이 보희, 문희의 꿈 이야기 배경 장소인 선도산 자락에 위치하고 있으며 뒤는 경주국립공원 서악 지구가, 앞은 무열왕릉이다. 도봉서당에 하룻밤을 묵은 다음날 무열왕릉을 걷는 호사를 누려보자. 무열왕릉을 비롯해 진흥왕릉-진지왕릉-문성왕릉-헌안왕릉 등 4기의 왕릉이 함께 있어 트래킹 하기 좋다.
경주 중심지에서 살짝 벗어난 외곽에 있지만 표지판이 잘 되어 있어 길 찾기는 어렵지 않았다. 체크인은 14-21시까지(늦은 체크인 미리 연락 필수), 체크아웃은 익일 11시까지이다. 주위에 편의점이 없기 때문에 간식거리는 미리 사가지고 들어가는 것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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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봉서당 가는 길 |
도봉서당은 숭앙문, 도봉서당, 추보재, 연어재, 상덕당 등 모두 7동(棟)이며 일종의 서원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배치 형식은 재사를 강당 뒤에 둔 전강당 후재사형인데, 이는 경상도 지역에서 보기 드문 형태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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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앙문 |
숙박하지 않아도 내부를 둘러볼 수 있지만 오후 6시부터 오전 11시까지는 숙박하는 사람들을 위해 단순 관광은 제한된다. 도착 후 사장님께 전화를 하니 5분도 안되어 오셔서 안내해주셨다.
마당 한 켠에는 상사화 한 송이가 잎 한 장 없는 묘한 모습으로 꽃을 피우고 있었다. 상사화는 잎이 다 말라버린 후에 꽃이 피고, 잎이 자랄 때는 꽃이 피지 않아 서로 볼 수 없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꽃말은 '이룰 수 없는 사랑'
강당으로 사용되었던 도봉서당은 앞면 5칸, 옆면 1.5칸이며 앞쪽에 툇마루를 두고 뒤에 쪽마루(작은 간이 마루)가 둘러져 있다. 문을 떼어 처마 끝에 설치된 고리에 걸면 바람이 술술 통하는 대청마루가 된다.
도봉서당 고택체험은 1개의 동을 통째로 빌려 숙박하는 것인데 도봉서당이 여러 개의 동 중에서 가장 크기가 크다. 크기 상관없이 숙박 가격은 동일하니까 예약할 때 잘 모르겠으면 그냥 큰 데 예약하면 된다. 숙박비는 주중 10만 원, 성수기 13만 원으로 건물 한 채를 빌리는 것임을 감안할 때 매우 저렴한 듯 싶다. 게다가 독립된 별채라 프라이빗해서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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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봉서당의 낮 |
추보재는 크기가 좀 작은 편인데, 2개의 쌍둥이 온돌방이 있고 중간에 오픈된 대청마루를 둔 중당협실(中當挾室)의 형태를 하고 있다. 장작을 떼는 구들방은 추보재에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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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덕당 |
오늘 묵을 숙소인 연어재는 원래 서재였고, 남쪽과 동쪽을 각각 팔작(八作) 지붕으로 처리해 정면이 2개다. 추보재와 상덕당의 지붕과 비교하여보면 지붕 모양이 다름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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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전통 지붕 형태 |
사진에 보이는 방향과 왼쪽의 등이 켜진 쪽, 두 면이 모두 정면이다. 추보재보다 조금 더 크고 지붕 모양이 예뻐보여서 나는 연어재로 예약했는데 방 구조도 좋고 아주 마음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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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봉서당 주차 |
공터 주차장 쪽에서 바라본 도봉서당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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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칸 |
샴푸, 린스, 보디워시, 폼클렌징, 치약, 비누가 갖춰져 있었고 냄새도 없고 깔끔했다. 수건은 숙소에서 들고 가야 하고 콘센트가 따로 없으니 머리는 숙소에서 말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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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른쪽칸 내부 |
연어재는 여러 방으로 되어 있는데 큰 방에는 이불, 벽거울, 옷걸이, 선풍기 2대,에어컨이 구비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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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어재 큰 방 |
모기장도 준비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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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기장 |
벌레가 많거나 시골 냄새가 나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나방, 파리 같은 벌레도 거의 없고 냄새도 안났다. 이불도 냄새가 나거나 눅눅함 없이 깨끗해서 쾌적하게 꿀잠을 잘 수 있었다.
작은방은 큰 방과 사이문을 열어 하나의 공간으로 이용할 수도 있고 문을 닫아 별도의 방으로 나눠 쓸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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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어재 작은방 |
거실은 문을 모두 열면 대청마루가 된다. 케이블 방송을 시청할 수도 있고 와이파이도 잘 되어있었다.
드라이기, 스킨, 로션, 모기약 스프레이, 피우는 모기향, 꽂는 모기향.
냉장고에는 종이컵과 생수 2병이 준비되어 있었다. 인터폰 같은 것은 따로 없고 필요한 것은 사장님한테 전화나 문자로 연락하면 언제든지 더 가져다주신다고 했다.
화장실이 밖에 있어 맥주를 많이 마시면 다녀오기가 무척 귀찮으니 적당히 마시고 일찍 자기로 했다. 그래도 화장실 가느라 예쁜 밤하늘을 볼 수 있어서 좋았다. 공기도 좋고 외곽이라 날씨만 맑으면 별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다고 한다.
아침바람이 시원했다. 툇마루에 앉아 산들바람을 느끼며 모닝커피를 마시니 이건 무릉도원이 따로 없다. 아, 여기 오길 참 잘했어.
커피 타임 후 뒷산을 잠시 걸었다. 도봉서당 건물 뒤편이 경주 국립공원 서악 지구 들머리이다. 시원한 계절에는 가볍게 등산한 후 도봉서당에서 하룻밤 묵어 가면 기가 막힐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