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식주의자가 철분을 충분히 섭취하는 방법

아, 빈혈인가

정기적으로 헌혈을 하고 있는데 이번에 헤모글로빈 수치가 11.3 밖에 안되었다. 3주에 거쳐 이 걸 세 번 반복했는데 세 번 다 튕겼다. 뭐지? 헌혈을 27회 하면서 이제껏 이런 적이 없었는데. 달라진 것이 있다면 최근 한달 정도 비건 채식을 한 것 밖에는 없다. 철분이 많다는 녹황색 채소와 콩과 두부도 골고루 많이 먹었는데 왜 빈혈이지? 처음에 간호사가 고기 먹으라고 했을 때 비건 식단으로도 건강할 수 있을거라 생각했기 때문에 귓등으로 들었는데,  세번 째 팅기고 나니 내 채식 식단에 문제가 있는 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채식과 철분 수치에 대해 좀 찾아봤다.


헌혈은 최소한 혈색소 12.0Hb이상은 되야 가능하다. 



철분의 기능

철은 체내에서 산소 운반, 에너지생성, DNA 합성, 세포호흡에 관여하는 필수 미량 원소로서 특히 헤모글로빈(Hb: Hemoglobin)을 만드는 데 필요한 미네랄이다. 헤모글로빈은 적혈구(RBC; Red blood cell)에서 발견되는 철을 포함하는 붉은색 단백질로 피가 붉은 것도 헤모글로빈 때문이다. 헤모글로빈은 4개의 Heme 구조로 구성되어 있고, 1개의 Heme기에 산소(O₂) 1분자가 결합하여 헤모글로빈 하나 당 4분자의 산소를 운반할 수 있으므로 체내 각 조직에 산소를 공급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는 단백질이다. 

1개의 적혈구는 약 2억 개의 헤모글로빈을 포함하며 이는 적혈구 중량의 약 95%를 차지할 정도로 중요한데, 헤모글로빈의 Heme 구조는 철을 포함한 Porphyrin 고리와 Globin 단백질로 이루어져 있어 철이 부족하면 헤모글로빈을 제대로 합성할 수 없다. 체내 철의 2/3이상은 혈색소를 합성하는데 쓰이기 때문에 철이 부족하면 적혈구 형성에 영향을 주게된다. 철이 부족하면 대표적으로 철결핍성 빈혈(IDA: iron deficiency anemia) 외에도 집중력 감소, 무기력증, 운동능력 감소, 면역력 저하 등의 다양한 증상이 나타난다. 

적혈구 속 헤모글로빈이 체내에 산소를 공급하는 운반자다. 



철분의 대사

정상 성인의 몸에는 약 3-5g의 철이 있는데, 이 중 약 60% 정도는 혈색소 내에 존재하고(Biochim Biophys Acta2012), 나머지 중 30%는 간세포(hepathocyte)와 망상내피계 대식세포(reticuloendothelial macrophage)에, 10%는 근육에 산소를 공급하는 미오글로빈(myoglobin)형태로 저장되어 있다(J Clin Lab Anal, 2014).

인체는 매일 2천억개 이상의 적혈구가 생성되고 여기에는 20-25mg의 철이 필요한데, 대부분 대식세포에 저장되어 있던 철이 재활용되기 때문에 하루 1-2mg 정도의 철만이 피부 및 소장상피세포의 탈락에 의해 비특이적으로 소실되며, 건강한 성인은 하루에 1-2mg의 철을 식이를 통해 흡수하므로 손실된 양만큼 보충하여 균형이 유지된다. 

철의 대사(Normal iron biology, Lab Medi, 2014)

이렇게 체내 철분 항상성을 유지하는 시스템이 있지만 연령, 성별, 임산부, 성장기, 부적절한 식습관, 다이어트, 신체 활동이 많은 운동선수, 채식주의자, 정기적으로 헌혈을 하는 경우 등의 사람에 따라 철 요구량이 증가되거나, 철분 섭취가 요구량에 비해 불충분하여 철 균형이 파괴되는 경우에는 철결핍성빈혈이 발병할 수 있다. 다만 이런 경우에도 철이 하루이틀 결핍되었다고 단기간에 발병하는 것은 아니다. 

 

철분의 종류 흡수율

철은 체내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동시에 잠정적인 독성을 가지고 있으며 인체는 효과적으로 철을 배설하는 수단이 없기 때문에 철의 항상성 유지에는 식이철(3가철Fe³+ 형태로 불용성)의 흡수 조절이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식이철의 흡수는 체내 철 저장량, 저산소증 유무, 적혈구 생성 속도에 의해 영향을 받으며(대한내과학회지, 2015), 식품에 함유된 식이철에는 헴철과 비헴철의 2가지가 있고(Physiol Rev ,2013), 서로 다른 기전을 통해 체내에 흡수된다(J Clin Pathol, 2011). 

헴철(Heme iron)은 전체 식이 철의 10% 내외에 불과하지만 체내 흡수되는 양은 전체의 1/3 정도를 차지한다. 대부분 헤모글로빈이나 미오글로빈에서 유래하여 육각형의 protoporphyrin ring에 단단히 결합된 철-포르피린(iron-porphyrin) 화합물로 흡수되므로 다른 음식물에 의해 영향을 받지 않아 흡수율이 매우 높다(Am J Clin Nutr, 2017)

비헴철(Non-heme iron)은 전체 식이 철의 90%를 차지하는데, 헴 단백질 외 다양한 단백질에 결합되어 존재하지만 비교적 결합력이 떨어져 pH, 탄닌산(tanin), 피테이트산(phytate), 폴리페놀(polyphenol), 섬유질 등의 여러가지 요인에 의해 영향을 받기에 흡수율이 낮다

비헴철(왼쪽)과 헴철(오른쪽)의 구조


보통 동물성 식품 중의 철은 40%가 헴철 + 비헴철 60% 정도로 구성되며, 식물성 식품 중의 철은 모두 비헴철형으로 존재한다. 헴철 흡수율은 15-35%(Am J Clin Nutr 2010), 비헴철의 흡수율은 5% 정도에 불과하여 우리 몸은 비헴철보다 헴철을 더 쉽게 흡수한다. 그렇지만 비헴철이 중요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비헴철은 체내 산소 농도를 감지하는 기전(Oxygen sensing)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며(Cell cycle, 2008), 섭취하는 양으로 보면 헴철 식품보다 훨씬 많은 양을 먹기 때문에 비헴철이 함유된 식품도 매우 중요한 철 공급원이라고 할 수 있다. 

동물성 철분과 식물성 철분은 종류와 흡수율이 다르다(Nutrition 4th edition, 2011)


철분의 하루 권장섭취량 (RDA)

철분은 연령, 성별, 임신 여부 등에 따라 권장섭취량(RDA)이 달라진다. 만 50세 이상이라도 폐경이 되지 않았다면 철분을 더 섭취해야 하고, 헌혈을 자주 하는 사람도 헌혈 빈도에 따라 철분이 더 필요할 수 있다. 운동 선수와 같이 신체 활동이 많은 사람이나 임산부, 제산제 과다복용 환자, 위 절제 수술을 받은 환자(영양분 흡수를 잘 못함)등도 더 많은 철분을 필요로 한다. 채식주의자라면 아래 표에서 각 권장량의 1.8을 곱한 양이 권장되며(Canadian Nutrient File, CNF) 이는 일반인보다 약 2배 이상 많은 양이다. 

철분의 하루 권장 철분 섭취량 (출처=Canadian Nutrient File, CNF)


채식주의자가 철분을 충분히 섭취하려면

비헴철은 헴철이 함유된 식품(육류의 단백질을 말함; 동물성 식품이라도 우유 단백질과 계란 흰자의 단백질은 철분 흡수를 저해한다)이나 비타민 C(Ascorbic acid)와 함께 섭취하면 흡수를 높일 수 있는데(Am J Clin Nutr 1976), 채식 식단에서는 비타민 C가 철분 흡수를 높이는 유일한 방도라고 할 수 있겠다(Scand J Gastroenterol, 1982). 보통 채소에는 비타민 C가 풍부하기 때문에 채식으로도 철분 흡수 문제가 없을 것 같지만 비헴철은 콩단백질, 폴리페놀 화합물, 식이섬유에 영향을 받으므로 간단한 문제는 아니다.

그렇지만 함께 먹는 음식의 종류를 주의하고(음식의 궁합이 중요하다!), 철분이 풍부하다고 알려진 식품을 즐겨 먹으려고 노력하는 것만으로도 철분수치는 천천히 개선될 수 있다. 철분 함량을 매 끼니 계산하고 같이 먹는 음식을 정교하게 계획해서 먹기란 거의 불가능하니 무엇보다 내 몸의 소리에 귀기울이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여자는 월경으로 인해 주기적으로 철분을 소실하므로 한번 혈색소 수치가 떨어지면 잘 올라오지 않을 수 있다. 나는 현기증이 심해서 별이 보일 때 팥이 그렇게 당기고 소금으로만 절인 비트절임이 입에 쫙쫙 붙었는데 찾아보니 그게 철분이 풍부한 음식이었다. 그냥 입에 당겨서 열심히 먹었을 뿐인데 어지럼증도 차츰 사라지고, 혈색소 수치도 11대에서 12대로 서서히 개선되었다. 

철분이 많은 식물성 식품에는 콩류(대두, 렌즈콩, 병아리콩, 팥 등), 녹황색 채소(깻잎, 시금치, 케일 등), 견과류(아몬드, 땅콩, 호박씨, 깨 등)등이 있고, 비타민 C 함유량이 높은 식품(피망, 브로콜리, 귤, 키위, 딸기, 양배추, 오렌지, 토마토 등)과 함께 먹으면 흡수율을 높일 수 있다(식약처).

채식은 누구에게나 잘 맞는 식단이 아니고, 모든 병을 치유하는 완벽한 식단도 아니다. 혈색소 수치가 낮아 불편한 증상이 나타난다면 철분이 풍부한 식품을 많이 먹는 것만으로 손실량을 보충하기 어려울 수 있다. 그럴 때에는 동물성 식품과 함께 철 보충제를 먹는 것도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 때 칼슘에 의해 흡수가 저해될 수 있기 때문에 칼슘 제제나 우유와 함께 먹는 것은 피한다. 자연식품으로 여의치 않다면 철분 강화 두유, 철분 강화 시리얼과 같은 철분 강화 조제식품도 도움이 될 수 있는데, 가공식품의 각종 식품첨가제도 철분 흡수를 저해할 수 있기 때문에 되도록 자연식품 위주로 먹고, 식 후에 커피와 차를 마시는 습관도 탄닌 성분에 의해 철분 흡수를 저해할 수 있기 때문에 차와 커피는 식후 3-4시간 이후에 마시는 것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