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를 끊어야 하는 이유
커피는 1895년 우리나라에 처음 소개된 이후로 식생활의 서구화와 더불어 점차 소비량이 늘기 시작해 이제는 담배나 술과 같은 기호식품의 하나가 되었습니다.
2018년 기준 한국인 1인당 연간 353잔의 커피를 소비하는 것으로 조사되었는데, 이는 세계 6위에 해당하는 양이며, 세계 인구의 1인당 연간 소비량 132잔의 약 3배에 달하는 수준이지요(한국경제연구원, 2019).
이렇게 커피를 모두가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아무래도 각성 효과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한국인은 잦은 야근에 노동시간이 기니 피곤해서 더 찾게 되는지도 모르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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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나라별 커피 원두 소비량 (출처=International coffe Organization) |
이러한 커피의 효과는 알다시피 카페인 때문입니다. 카페인의 주성분은 1,3,7-트리메틸크산틴(1,3,7 trimethylxanthine)으로 질소를 포함하고 있는 쓴 맛의 알칼로이드(Alkaloid) 화합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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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인의 분자구조 |
카페인은 중추신경계와 교감신경계를 자극하여 신진대사를 증가시키고 중추신경계에 작용하여 정신을 각성시키고 피로를 줄여 일시적으로 졸음을 막아주는 긍정적인 효과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 밖에도 이뇨작용으로 체내 노폐물을 제거하는 이로운 작용도 있지요.
다만 사람에 따라 50-200mg/kg 이상의 카페인을 한꺼번에 먹을 경우 전해질 이상, 경련, 현기증, 구토, 부정맥 등의 급성 중독 증상이 나타날 수 있고(Rudolph T, 2010), 만성적으로 카페인을 많이 섭취하는 경우에는 두통, 심계항진, 흥분, 빈맥, 불면, 불안, 신경질, 무기질 결핍, 과산성 위염 등의 'Cafffenism'이라 불리는 증후군(여러 증상이 동시다발적으로 나타나는 병증)을 경험하는 경우도 있습니다(Lewis SN,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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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ffeinism'의 증상 (출처=위키피디아) |
2017년 WHO(세계 보건기구)는 간 기능이 저하되어있는 사람이 카페인을 장기적으로 먹는 경우 아드레날린(adrenaline), 노르아드레날린(noradrenaline), 코르티솔과 같은 스트레스 호르몬의 혈중 농도를 증가시켜 고혈압 위험이 있으며, 칼슘 섭취가 적은 사람이 카페인을 섭취하면 체내에서 칼슘 배출 속도를 증가시켜 골다공증을 유발할 가능성이 있고, 임산부가 카페인을 섭취하면 태아의 발육을 저해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하였습니다.
이러한 작용은 개인차가 크기 때문에 건강에 미치는 영향을 정확하게 평가하기는 어렵지만, 사람은 카페인은 과다 복용으로 사망할 수도 있고 실제로 그런 사례들이 있어요.
'커피 좀 줄여야겠다..'
라고 매일 생각은 하지만 커피는 마실수록 더 먹고 싶고 매일 먹고 싶습니다. 오늘은 안 먹어야겠다 하고 '생각'하기도 전에 그냥 몸에서 강렬하게 카페인을 원해요. 마시지 않으면 머릿속에 커피 생각밖에 없어서 아무것도 할 수가 없습니다. 한 때는 스타벅스 bogo 1+1 쿠폰이 생기면 아메리카노 9샷 추가한 아메리카노 두 잔을 주문해서 이틀 만에 다 마셔버렸던 적도 있답니다.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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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 사러가려고 주말에 일찍 일어나는 새럼 |
그렇지만 카페인 의존증을 '중독'으로 인정될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아직 이견이 있습니다. 카페인은 도파민(Dopamine, 쾌락을 느낄 때 분비되는 신경전달물질)의 급증을 유발하기는 하지만 코카인과 같은 다른 중독성 물질들에 비해 그 정도가 약하기 때문입니다. 의학적으로 인체에 심각한 해로움을 준다는 증거도 미약하기 때문에 그동안 건강상의 문제로 잘 다루어지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나 최근 WHO에서는 ICD-10 (질병의 국제 통계 분류 및 관련 건강 문제)을 통해 카페인 의존 증후군을 인정했고, 미국 정신과협회(APA)에서 발표한 DSM-5(정신 장애 진단 및 통계 매뉴얼 5판)에서는 카페인을 다른 약물과 같은 중독성 물질로 인정하지는 않지만 카페인 남용과 의존성에 대한 사용 장애의 진단 기준안은 제안하고 있습니다. 물론 이 기준이 타당한지에 대한 추가적인 연구가 필요하다는 전제 하에서요. 카페인을 중독 물질로 구분하지는 않았지만 문제가 되는 임상 상태로는 인식했다는 뜻이죠.
APA의 진단 기준안에 따르면 저처럼 이렇게 커피를 줄이거나 끊고 싶다는 욕구가 있지만 계속 실패하거나, 카페인에 의해 신체적·심리적 문제가 있음에도 계속 커피를 마실 수밖에 없고, 커피를 마시고 싶은 강한 갈망, 충동을 느끼며 마시는 양을 조절하는데 어려움이 있다면 카페인 중독 상태라고 볼 수 있습니다.
어쨌든 카페인이 수용성 및 지용성으로 혈액 뇌 장벽을 관통하여 뇌로 들어가 신경계에 영향을 미치는 향정신성 약물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카페인 하루권장량
유럽 식품안전청(EFSA)은 임산부를 제외한 건강한 성인이라면 1회 200mg 이하, 하루 400mg 이하로 섭취할 때 건강 위험에 대한 우려는 발생하지 않는다고 보았습니다. 이에 따라 한국 식약처에서도 카페인의 일일 섭취 기준을 성인 400mg 이하, 임산부 300mg 이하, 어린이와 청소년은 각자 체중 1kg당 카페인 2.5mg 이하 섭취할 것을 제안했는데요, 400mg이면 아메리카노 2잔 정도의 양입니다. 권장량을 초과하여 지속적으로 먹을 때 의존 증상이 일어날 수 있다고 알려져 있지만, 이 양은 사람에 따라 많이 달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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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카노와 콜드부루 1잔(CUP)당 용량 및 카페인 함량 (출처=한국소비자원 2018년 보도자료) |
커피 끊기 금단 증상
DSM-5 진단 기준에 따라 카페인을 끊거나 줄인 후 24시간 내에 두통, 현저한 피로, 졸음, 불쾌한 기분, 우울감, 신경질, 집중 장애, 독감과 유사한 증상(메스꺼움, 구토 또는 근육통/경직) 중 3개 이상이 나타난다면 카페인 금단 증상으로 봅니다.
카페인은 아데노신과 구조가 비슷하여 아데노신 수용체(adenosine receptor)에 대신 결합하여 아데노신이 활성화되는 것을 방해합니다. 그래서 각성효과를 주는 것이지요. 뇌는 카페인이 계속 들어오는 상황에 반응해서 아데노신 수용체의 양을 늘립니다. 아데노신 수용체가 많아지니 똑같은 각성 효과를 내려면 점점 더 많은 카페인을 먹을 수밖에 없죠. 그런데 갑자기 카페인 공급이 똑 끊긴다면? 아데노신 시스템이 과하게 돌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이 바로 금단 현상의 신경 화학적 메커니즘이에요(Griffiths RR.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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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인 것은 뇌는 카페인 공급이 끊긴 상황에 빠르게 반응하여 아데노신 수용체의 수를 자연스럽게 감소시킵니다. 보통 7-10일 정도면 정상 수치로 회복되고 중독이 해제됩니다.
그렇지만 그 1주일이 정말 일상생활을 하기 어려울 정도로 힘들 수도 있어요. 카페인의 금단증상에 대한 가장 간단한 치료방법은 카페인 음료를 마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금단 증상을 방지하려면 2-6주에 걸쳐 서서히 줄이는 것도 방법입니다(Sweeney MM, 2019). 대부분의 사람들은 약 100mg의 카페인을(아메리카노 약 1/2잔) 섭취한 후 1 시간 이내에 완화되는데, 편두통이 있을 정도로 심한 금단 증상이 있다면 타이레놀을 추가로 복용하는 것도 좋아요(Lipton RB, 2017).
커피 끊기 한 달 후기
어떤 것에 중독되어 내가 컨트롤할 수 없다는 느낌은 썩 기분 좋은 느낌은 아니죠. 저는 커피값으로 식비의 대부분을 지출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돈을 아끼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모든 중독된 것들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싶다는 마음이 더 컸답니다.
양은 대체 어떻게 줄일 수 있는지 잘 모르겠고, 조금 마시는 것은 중독을 연장시킬 뿐이라고 생각해서 결심한 다음 날부터 딱 끊었습니다. 커피를 끊기도 결심한 날의 다음날부터 머리가 울리는 듯한 두통이 시작되었고, 미친듯이 졸리고 괜히 울적하고 그랬어요. 빼박 카페인 중독 상태였나 봅니다. ㅠㅠ
커피를 끊으니 카페에 가면 먹을 것이 없더군요. 티백차는 돈 아깝고 다른 음료는 설탕 덩어리라 먹기가 싫어서 딱 한번 아메리카노를 주문한 적이 있어요. 커피를 끊고 5일 차가 되던 날이었습니다. 그런데 이걸 1/3도 못 먹었습니다. 원래 무조건 아아에 샷 추가해서 마시는 사람인데요. 몇 모금 조금 마시고 나서 너무 어지럽고, 약간 메쓰껍기도 하고 두통도 있고 그날은 내내 고생했습니다. 몸에 무리 가는 그 느낌이 너무 싫더라고요. 그래서 아, 이제 어쩔 수 없이 정말 끊어야겠구나 했죠.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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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끊기 5일차에 아메를 1/3도 못먹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게 머선일 |
그렇게 딱 8일 지나니까 모든 금단증상이 깨끗하게 사라졌습니다. 졸리는 것도 없고 밤에 잠도 푹 잘 자요. 커피를 먹어도 반나절 정도만 또릿또릿 하지 더 피곤하고 밤에도 잘 못 자고 그랬거든요. 물론 사람이니까 피곤할 때는 있지만 커피를 먹을 때와는 다른 자연스러운(?) 피로랄까요? 예전에는 만성피로였다면 지금은 저녁 즈음돼서 피곤할 때 돼서 피곤하더라고요. 그날 그날 내 몸의 상태를 좀 더 민감하게 느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요즘은 카페에 가면 에이드 종류 많이 주문합니다. 설탕 덩어리지만 카페인보다는 건강에 이롭다고 생각해요. 가끔 단 거 먹기 싫으면 탄산수도 주문하고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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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에서는 탄산수나 에이드를 마셨습니다. |
집에서는 따뜻한 물이나 보리차를 많이 마셨습니다. 가끔 커피 생각이 날 때도 있었어요. 그런데 예전처럼 몸이 강렬하게 원하는 그런 느낌은 아니고요, 비 오는 날이나 그럴 때 커피 한잔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잠깐 스쳐 지나가는 정도? 그냥 심리적인 이유여서 유혹을 견뎌야 할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그동안 안 먹은 게 아깝고 금단 증상을 또 겪기는 싫더라고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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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물이나 차가 도움이 많이 됩니다 |
ALT와 AST는 간 기능을 확인하는 기초 검사 항목 중 하나인데, 간세포가 손상받는 경우 수치가 증가합니다. 커피를 많이 마시는 사람은 이 수치가 높다는 보고가 있어요(Nakanishi N, 2000).
저는 정기적으로 헌혈을 하고 있는데, 헌혈을 하면 혈액검사를 해줍니다. 갑자기 궁금해져서 다시 확인해보니 ALT와 AST 항목이 있었더라고요. 커피를 끊고 한 달 후에 둘 다 수치가 줄어들었네요. 신기해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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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T 수치 개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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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ST 수치 개선 |
또 한 가지는 빈혈이 없어졌습니다. 카페인은 혈중 페리틴 수치를 떨어뜨려 철분 흡수를 방해한다고 알려져 있는데, 헌혈할 때 혈색소 수치가 생리 중이었는데도 불구하고 12.5로 전혈이 가능한 수치가 나왔어요. 근 1년간 계속 11.9를 넘긴 적이 없었거든요. 어쩐지 컨디션이 좋더라니 갑자기 혈색소가 빡 올라와 있어서 깜짝 놀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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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얼굴과 몸 피부도 조금 좋아졌습니다. 드라마틱하게 달라지진 않고요, 그냥 만져지는 감촉이 보드라워졌어요. 한두 달 전에는 만져보면 거칠고 요철도 심하고 그랬거든요.
커피를 안 먹는다고 활력이 더 떨어지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렇다고 더 좋아지는 것도 아니지만(이건 운동을 해야 할 것 같아요. ㅜㅜ) 그냥 커피를 먹을 때나 안 마실 때나 똑같아요. 그러면 굳이 돈 들여 가며 마실 필요는 없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일단은 몸에 무리가 가는 것이 하나도 없는 편안한 느낌도 너무 마음에 들고요. 이제 커피에 의존해서 살지 않아도 되니 조금은 자유로워진 것도 같고 기분이가 좋네요. 커피 끊으니 느무 좋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