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근의 효능
당근(Daucus carota L.)은 양귀비과 식물로 카로테노이드(Carotenoids), 플라보노이드(Flavonoids), 폴리아세틸렌(Polyacetylenes), 각종 비타민과 무기질을 함유한 뿌리채소입니다. 당근의 색상은 흰색, 노란색, 주황색, 빨간색, 보라색 또는 진보라색으로 다양한데, 처음 재배되던 것은 노란색과 보라색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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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색 당근과 보라색 당근 (출처=구글 이미지) |
그러다가 15세기 무렵 개발된 주황색 당근이 프로비타민 A (Provitamin A)을 많이 함유한 것이 알려지면서 전세계적으로 인기가 높아지기 시작했죠(Plant Breeding Reviews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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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으로 먹는 주황색 당근 |
비타민 A에는 이미 형성되어 있는 종류와 섭취 후 체내에서 대사과정을 통해 전환되는 종류가 있습니다. 이미 형성되어 있는 비타민 A는 레티놀과 그의 에스테르화 형태, 레티닐 에스터 형태로서 우유, 유제품, 버터, 생선 기름, 계란, 육류(특히 간)를 포함한 동물성 식품에 들어있습니다. 그리고 체내에서 비타민 A로 전환되는 카로티노이드(Carotenoids)가 있는데 이건 식물에만 들어있어요.
모든 카로티노이드가 비타민 A로 전환되는 것은 아니고, 라이코펜, 루테인, 제아잔틴처럼 카로티노이드지만 비타민 A로 전환되지 않는 종류도 있습니다.
비타민 A로 전환되는 카로티노이드를 프로비타민 A 카로티노이드라고 하는데요, 비타민 A의 1/6 정도의 생물학적 활성을 가지며, 체내에서 대사과정을 거쳐 비타민 A로 전환되므로 비타민 A 전구체 또는 프로비타민 A라고 부릅니다. 프로비타민 A는 α-카로틴, β-카로틴, β-크립토잔틴 형태가 있어요. 모두가 체내에서 비타민 A (레티놀)로 전환되지만 이 중 가장 강력한 기질은 β-카로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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β-카로틴의 구조 (출처=구글 이미지) |
USDA 식품 구성 데이터베이스에 따르면 β-카로틴의 함량이 가장 높은 식품은 바로 당근입니다. 당근은 39개의 과일과 채소 중 영양가 순위 10위에 랭크될 정도로 영양이 풍부한 식재료이기도 하죠(J Agric Food Chem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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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 1당근 |
사실 동물성 비타민 A가 섭취 후 바로 이용되기 때문에 훨씬 효율적입니다. 그래서 비타민 A 결핍 시에는 프로비타민 A가 아니라 비타민 A를 처방하는 것이 선호되어요. 다만 비타민 A는 많이 먹으면 간과 지방세포에 많은 양이 축적될 수 있는데, 이때 메스꺼움, 구토, 두통, 탈모, 간 기능 이상, 기형아, 시각 장애 등의 독성 반응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프로비타민 A 카로티노이드도 동물성 비타민 A와 마찬가지로 간, 지방세포, 혈액에 저장되지만(Pure Appl. Chem. 1994), 장의 카로틴 생물전환의 항상성 조절 시스템에 의해 체내에 필요한 만큼만 비타민 A로 전환되기 때문에 과다 섭취해도 부작용이 적습니다(Asia Pac J Clin Nutr 2003). 프로비타민 A 카로티노이드가 생물학적으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이유이죠.
한 번에 귤을 많이 먹고 피부가 노래졌던 경험 누구나 한 번쯤 있잖아요?
카로티노이드는 지방조직으로부터 확산되거나 혈액과 땀샘을 통해 분비된 후 표피에 재침투하는 방식으로 피부에도 축적될 수 있습니다(Int J Dermatol. 2003). 이를 카로틴 혈증(Carotenemia)라고 하는데, 노랭이가 될 뿐 독성은 없어요. 오히려 항산화제로서 피부를 보호하는 역할을 한답니다(Exp Dermatol. 2011).
당근의 카로티노이드가 비타민 A로만 작용하는 것은 아닙니다. 카로틴 그대로 작용하여 강력한 항산화 작용과 함께 노화를 지연시키고 혈중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추며 항암 효과를 나타냅니다. 또한 카로티노이드뿐만 아니라 플라보노이드(Flavonoids), 폴리아세틸렌(Poylacetylenes), 비타민, 미네랄 등 각종 생리활성물질이 풍부하여 면역력 강화, 항당뇨, 심혈관 질환 감소, 항고혈압, 간 보호, 신장 보호 및 상처 치유 효과 등도 보고되어 있습니다(Food and Nutrition Sciences, 2014). 그래서 처음에는 의학적 목적으로 사용될 정도였지요.
당근 먹으면 시력이 좋아질까
1940년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독일은 영국을 치기 위해 밤에 공격을 했습니다. 이때 영국은 이를 잘 방어해내는데, 야간에도 적을 감지할 수 있는 새로운 AI형 레이더 시스템을 개발한 덕분이었습니다. 그러나 영국은 보안 유지를 위해 이를 비밀로 하고, 언론에 영국 공군 조종사가 당근을 많이 섭취했기 때문에 야간 전투에서 방어하는 데 성공할 수 있었다고 발표했습니다. 이로부터 당근을 먹으면 시력이 좋아진다는 당근 신화가 탄생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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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근 신화의 탄생 (출처=구글 이미지) |
전쟁 중에 도시 전체가 정전이 되곤 했는데, 영국인들은 당근을 먹으면 정전 시에도 잘 볼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거리에는 정전 중에 잘 볼 수 있도록 당근 소비를 장려한 광고 슬로건들이 수없이 붙었습니다. 당근 열풍이 부는 데는 얼마 걸리지 않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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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근이 건강을 유지시키고 정전시 시야를 확보하는데 도움이 된다는 슬로건 (출처=구글 이미지) |
비타민 A는 망막 수용체에서 빛을 흡수하는 단백질인 로돕신(rhodopsin)의 필수 성분으로, 결막과 각막의 정상적인 분화와 기능을 돕기 때문에 시각 기능에 매우 중요합니다(Informa Healthcare 2010). 또한 강력한 항산화 활성으로 정상적인 세포 성장과 분화를 도와 노인성 황반변성을 예방하고 시력 저하를 완화하는 효과도 하지요. 실제로 비타민 A와 β-카로틴 섭취량이 많을수록 백내장 발병률이 적다는 보고도 있습니다.
그러나 비타민 A 섭취한다고 떨어진 시력을 좋게 만들 수는 없습니다. 시력은 영유아기에 완성되지만 현대인은 과도한 전자기기의 사용으로 인한 산화 스트레스, 장시간 렌즈 착용, 환경오염, 노인성 안구 질환 등으로 시력이 계속 떨어질 수 있어요. 다시 말해 현대인의 시력 저하의 원인은 비타민 A가 모자라서가 아닙니다. 시력 저하의 원인이 딴 데 있으니 당근을 먹으면 눈에 좋은 것은 맞지만 시력에는 큰 효과가 없다는 이야기죠.
그런데 우리는 지금도 당근을 먹으면 시력이 좋아진다고 생각합니다. 80년 전의 당근 드립이 현대에까지 진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니 놀랍죠? ^^
당근, 어떻게 먹어야 할까
카로티노이드는 열에 강하기 때문에 삶거나 볶아도 크게 파괴되지 않습니다. 생으로 먹는 것보다 익혔을 때 당근의 조직으로부터 쉽게 용출되므로 흡수율이 높아져요. 프로비타민 A는 지용성 비타민이기 때문에 체내에서 흡수되려면 먼저 지질로 녹아 나와야 하는데, 카로티노이드의 급원인 채소와 과일은 지방이 거의 없기 때문에 최적 흡수를 위해서 3-5g 정도의 지방을 함께 섭취하는 것이 좋습니다. 흠뻑 아닙니다. 3-5g이면 티스푼으로 한 스푼입니다. ㅎㅎ
당근은 하루에 반쪽(약 100g)만 먹어도 비타민 A 하루 권장섭취량을 충족할 수 있어요. 저도 늙기 싫어서 얼마 전부터 1일 1 당근 챌린지 시작했는데 피부 트러블이 갑자기 좋아졌네요. 비타민이 부족해도 식탐이 생길 수 있다는데 뭐 먹고 싶은 것도 줄어드는 것 같습니다. 시력에는 모르겠지만 미용적 측면에는 따봉인 듯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