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귀비의 피부관리비법이었던 차(茶)
삼국지에 나오는 남만(南蠻)과 제갈량(諸葛亮)의 전투에서 촉나라의 군사들은 먼 원정길에 지쳐 괴질과 같은 풍토병에 시달리게 된다. 이에 제갈량은 나뭇잎을 삶아 먹여 풍토병을 이겨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는데 이 나뭇잎이 찻잎으로 밝혀져 오늘날의 윈난(雲南) 지역에서는 제갈공명을 차조(茶祖)로서 숭배한다. 잎을 삶아 먹였다는 기록으로 보아 이때는 긴압된 형태의 차가 아니었음을 알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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윈난에서 차의 조상으로서 숭배되고 있는 제갈량 (출처=read01.com) |
고대 중국의 4대 미녀 중 한명인 양귀비(楊貴妃)는 특히 피부가 희고 아름답기로 유명했는데 차(茶)가 양귀비의 피부관리 비법으로 알려졌다. 또한 청나라 시대에 천하를 쥐락펴락하던 서태후(西太后)도 차를 마시는 것이 아름다움의 비밀 중 하나라고 생각했다. 사실 차를 이용한 피부관리는 중국에서 처음 발원한 것이다.
차의 효능은 여러가지가 있지만 가장 강력하고 중요한 효능은 항산화 활성일 것이다. 이는 폴리페놀 화합물에 의한 것으로 차의 주요 항산화 성분은 카테킨(Catechin)으로 알려져 있다. 카테킨 함량은 품종, 재배지역, 잎 가공방법에 따라서도 달라진다. 차가 발효되면 카테킨이 적황색을 띠는 테아플라빈(Theaflavin)류로 산화 중합되므로 일반적으로 흑차보다 녹차(보이숙차보다 보이생차)가 항산화 활성이 높다(Int J mOl Sci. 2020). 차 카테킨은 비타민 C보다 항산화 활성이 높은 것으로 보고되어 있다(Molecules. 2012).
요즘은 화장실에서 거울을 볼 때마다 얼굴이 백인이 되어 있어서 놀랄 때가 있다. 손도 뽀얗고 피부결이 촘촘해져서 기분탓인가 했는데 가만 생각해보니 최근에 보이생차에 입문하면서부터 느껴지는 변화다. 물론 다음날이 되면 얼굴이 다시 검어져 있긴 하지만ㅎㅎ 일반적인 녹차나 보이숙차를 마실 때와는 분명히 다르다. 아마 보이차가 천혜의 자연환경[주로 윈난성의 린창(臨滄, Lincang), 보이(puer), 반나(版納, Banna)]에서 자라나 다른 차보다 맛이 쓴만큼 폴리페놀 함량도 높고 그래서 강력한 항산화 활성으로 인한 미백효과가 나타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양귀비가 차로 피부관리를 할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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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는 양귀비의 피부관리비법이었다. (출처=구글 이미지) |
보이차는 티벳인들에게도 아주 인기가 있었다. 초목이 부족한 티베트 고원에서는 채소나 과일 대신 차를 통해 생명유지에 필요한 비타민을 섭취해야했기 때문에 차는 생필품이나 다름없었다. 차는 중국이 티베트의 말을 사들일 때 일종의 화폐로 사용되었다. 말과 교환한 차를 싣고 다시 티베트로 돌아가려면 차마고도(Tea horse Road)의 깍아지는 협곡과 험준한 설산을 몇 주에 걸쳐 가야했기에 운송을 쉽게 하기 위해 차는 떡이나 벽돌 모양으로 압축했다. 짐꾼, 노새, 말, 야크 따위로 운반되는 중 차는 습기와 온도변화 등에 따라 산화되고 발효되어 맛이 점차 변했는데 이런 산화된 차의 특성이 높게 평가되었다. 교역이 시작된 곳은 지금의 서쌍판납(西雙版納, 시솽반나) 지역인 윈난성의 보이현이었기 때문에 이후로 이 차는 보이차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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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최고(最古)의 육상 무역로인 차마고도 (출처=구글 이미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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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최고(最古)의 육상 무역로인 차마고도 (출처=구글 이미지) |
보이차의 성분과 효능
차의 주요 성분은 플라보노이드(Flavonoids), 플라보놀(Flavonols), 페놀산(Phenoilc acid) 등의 폴리페놀 화합물이다. 대부분 카테킨(Flavan-3-ols)으로 알려진 차 폴레페놀은 플라보노이드로 찻잎 건조 중량의 약 18~36%를 차지하며(Life Sci. 2007) EGCG, EGC, ECG, EC의 4가지 유형으로 나눌 수 있다(Proc Soc Exp Biol Med 1999). 총 카테킨 중 EGCG는 약 59%, EGC는 약 19%, ECG는 13.6%, EC는 약 6.4%를 차지하며(Indian J Med Sci. 2001) 항산화력은 EGCG ≈ ECG > EGC > 갈산(GA) > EC 순이다. 양도 많고 생체활성도 높은 EGCG는 녹차 또는 백차에서 가장 높은 함량으로 발견된다.
가공과정 중 차의 산화 과정은 잎 세포에 존재하는 폴리페놀 산화효소(Polyphenol oxidase)에 의한 것으로 이는 차의 향미, 색과 향, 페놀 화합물 함량에 영향을 미친다. 대부분의 효소가 그렇듯이 폴리페놀 산화효소 또한 열에 불안정하여 쇄청과 미생물 발효, 떡 모양으로 증기 압축할 때 열에 의해 비활성화된다. 따라서 홍차와 달리 보이차는 폴리페놀 성분을 변화시키는 데에 미생물 발효(고상발효, Solid-state fermentation)가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Food Chemistry,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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쇄청모차의 무게를 달아 증기에 쪄서 압축하는 과정 (출처=www.discoveringtea.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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쇄청모차의 무게를 달아 증기에 쪄서 압축하는 과정 (출처=www.discoveringtea.com) |
녹차는 비발효, 백차는 가볍게 발효, 우롱차는 반발효, 홍차는 완전 발효, 그리고 보이차는 미생물 발효가 포함된다(J Agri & Food Chem 2019). 차 분야에서는 산화(Oxidation)와 발효(Fermentation)의 용어를 혼용하여 사용하고 있지만 발효는 미생물이 관여하는 경우를 일컬으며 정확히 말하면 보이차만이 발효차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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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리페놀의 산화는 차의 색, 향, 맛에 영향을 미친다 (출처=구글 이미지) |
차는 인체에서 합성할 수 없는 식이 폴리페놀의 공급원으로 차의 건강증진 효과는 차 폴리페놀 화합물에 의해 나타나는 것이다. 그렇다면 주요 차 폴리페놀 함량이 줄어든 오래된 생차 또는 숙차를 마시는 것은 건강상의 어떤 이점이 있을까.
폴리페놀은 산화되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다른 형태의 올리고머로 중합된다. 산화작용이 일어나면 갈색을 띠는 테아플라빈(Theaflavin), 테아루비긴(Thearubigin), 테아브라우닌(Theabrownin)이 순차적으로 생성되는데 미생물은 차의 폴리페놀 산화효소보다 차 폴리페놀을 더 완벽하게 산화시키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미생물 후발효가 들어가는 보이 숙차가 홍차보다 색이 어둡다.
특히 테아브라우닌은 숙차에서 가장 풍부한 차색소로 보이차의 주요 생리활성 성분으로 여겨지며(J Sci Food & Agri 2011) 정확한 화학 구조는 아직 알려져 있지 않다. 보이차 고유의 진한 색과 부드럽고 풍부한 맛의 필수요소로 품질의 평가하는 기준이 되기도 한다(LWT 2022). 홍차는 강해서 한잔 이상 마시기가 힘든데 보이 숙차는 부드러워서 공복에도 마실 수 있는 이유도 바로 테아브라우닌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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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숙차, 생차, 백차의 탕색 비교 (출처=구글이미지) |
또 하나의 주목할만한 화학적 변화는 갈산(Gallic acid) 함량의 증가이다. 갈산은 탄닌이 가수분해되어 방출되며 홍차에서도 발견되지만 미생물이 분비하는 탄닌 분해 효소(Tannase)에 의한 탄닌(Tannic acid)이 가수분해에 의해서도 만들어진다(J Agri & Food Chem 2019). 미생물이 관여하면 갈산이 다른 페놀성 화합물로 변형될 수 있으므로(Food Res Int 2013) 보이차는 발효과정에서 갈산이 증가할수도 있고 감소할수도 있다.
종합해보면 보이차는 미생물 발효 과정에서 카테킨을 포함한 폴리페놀 화합물과 아미노산이 감소하고, 쿼시틴, 캠페롤, 미리시틴, 루틴과 같은 플라보노이드, 갈산, 카페인 함량이 증가하므로 보이차는 생차와 숙차의 화학적 조성이 다르다. 다만 생차도 장기간 보관하여 잘 익으면 대부분의 화학 성분이 숙차와 유사해진다.
보이 생차는 강력한 항산화 및 항균 작용을 갖고 있고 카테킨은 지질대사를 활성화하여 식이의존성의 체지방 축적을 억제함으로서 다이어트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보이 숙차는 고지혈증과 혈중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추는데 도움이 되고 갈산은 췌장에서 분비되는 리파아제 활동 방해하고 카페인과 함께 에너지 소비를 촉진하여 항비만 활성을 나타낸다. 생차든 숙차든 지질 대사와 관련되므로 기름기 많은 음식을 많이 먹는 경우가 아니라 한식을 주로 먹으면 효과가 없을 수 있다. 보이차를 믿고 기름기 많은 식품을 과식한다면 그것도 아무 소용이 없다.
숙차에 많은 차 다당류는 단맛과 점성을 만들며 프리바이오틱스로 작용하여 장건강과 면역력 향상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숙차를 마시고 쾌변했다는 이야기는 이 때문이다. 또한 일반적으로 공유결합을 통해 단백질과 결합되기 때문에 충치를 억제하기도 한다(Int J Biol Macr 2017).
아마도 보이차의 효능 중 최고의 관심사는 열감이 아닌가 싶다. 숙차 또는 잘 숙성된 생차를 마신 후에 열감을 느꼈다는 수많은 사람들의 증언을 보면 열감이라는 것은 정말 존재하는 것 같다. 그러나 보이차와 발한의 관계는 과학적으로 검증된 것은 아니며 차를 마시고 느끼는 신체 반응은 사람마다 천차만별이고 열감도 마찬가지이므로 열감의 유무가 차의 품질 기준이 될 수 없다. 한의학적으로 생차는 성질이 차고 숙차는 성질이 따뜻하다고 보기 때문에 생차가 열을 내리고 숙차가 몸을 따뜻하게 하는 효과가 있음은 짐작해볼 수 있다. 그래서 차는 여름에 마시면 좋고 겨울에는 숙차를 마시면 추위를 이기는데 도움이 된다고 한다.
차 폴리페놀의 생체 활성 메커니즘은 아직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지만 여러 연구 결과와 필자의 개인적인 경험을 얹어 생각해볼 때 보이차는 생차든 숙차든 어떤 것을 마셔도 건강상의 이점이 분명해 보인다. 간단하게는 항산화와 피부미용을 원한다면 생차, 다이어트와 장건강을 원한다면 숙차가 좀 더 도움이 될 것 같다. 그러나 차는 기호식품이니 가장 좋은 것은 효능보다는 입맛에 맞는 차를 골라 마시는 것이다. 그리고 모든 차는 이롭지만 덜 마시고, 가볍게 마시고, 따뜻하게 마셔야 더 이롭다.
한가지 덧붙이자면 상업적 가치가 높은 오래 묵은 차가 더 강한 생리활성이 있는지에 대해서는 논쟁이 있다. 25년 이상 묵은 차가 귀해 생체활성 및 생화학적 성분에 대한 연구는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래 묵은 보이차는 불로초가 아니니 목을 멜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