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엔 병꽃나무처럼

요선암에 서서 주천강의 작은 물살이 이는 쪽을 가만 바라보다 이내 발길을 돌렸다. 주차장으로 돌아오는 길 옆으로 병꽃나무가 꽃다발처럼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다. 벌써 병꽃나무가 피는 계절이다. 병꽃나무는 5월에 습자지로 접어만든 것 같은 미색의 꽃을 피우는데 처음에는 연한 노란색이었다가 점차 장미빛으로 물든다. 강이든 바다든 척박한 환경 어디에서든 이렇게 줄기가 늘어질 정도로 많은 꽃을 피워낸다. 사는 게 팍팍하다 불평하는 대신 병꽃나무를 본받고 싶다. 


병꽃나무

요선암이 있는 주천강은 평창에서 합쳐져 서강이 된다. 그 합류부에 위치한 한반도 지형은 아마도 강원도 영월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랜드마크일 것이다. 입장료가 없는 대신 주차는 유료인데 2천원으로 저렴하고 화장실도 깨끗하게 잘 구비되어 있었다. 한반도 지형으로 가려며 먼저 나무계단을 올라야 하지만 40미터 정도로 짧고 이후로는 평지나 다름없는 산책로였다. 한반도 지형 전망대까지 대략 15분 정도 소요된다. 




영월 한반도 지형은 한반도 모양의 특이한 지형적 특성으로 2011년 대한민국 명승 제75호로 지정되었다. 2015년에는 한반도 습지라는 이름으로 세계적으로 보호할 가치가 있는 습지에 관한 국제 조약인 람사르(Ramsar) 습지로 등록되었다. 

한반도 지형 전망대에 올라 내려다보니 고도가 낮아서 한반도 모양이 잘 보이지는 않았다. 그래도 한반도처럼 동고서저(東高西低)의 형상과 함께 이쪽이 전라도고 저쪽이 함경북도이구나 하는 정도는 알 수 있다. 한반도 지형에서 동해 방향으로 그림같은 작은 마을이 있는데 선암마을이라고 한다. 신선이 이 곳 경치에 반해 내려와 놀았다는 전설 때문에 얻은 이름이란다. 비옥한 테라로사 토양의 붉은 빛과 갓 올라온 새 잎의 초록빛에 하늘과 강물의 푸른 빛이 대비를 이루는 경관이 아름다워 신선도 반했을만하다 싶다. 선암마을에서 한반도 뗏목체험을 운영하는데 신청하면 동해안에서 출발하여 서해안까지 전국 일주를 할 수 있다. 


대한민국 명승 제75호이자 람사르 습지로 등록된 한반도 지형

주차장 옆 쪽으로 간이 매점이 있는데 겉으로는 허술한 듯 보여도 안에는 꽤 여러가지를 갖춰 놓고 팔고 있었다. 한반도 지형 모양을 한 한반도빵은 잠시 고민하는 사이에 한 소쿠리가 금새 동이 나버렸다. 대신 소프트 아이스크림을 주문했는데 컵 바닥에 시리얼이 조금 깔려있고 홈런볼 한개가 토핑되어 있었다. 흘러간 옛노래가 잔잔히 흘러나오고 있었고 맑고 서늘한 공기 속에 햇살은 따사로웠다. 새소리가 크게 들려 소리나는 쪽을 올려다보니 제비 한쌍이 집을 지어놓고 있었다. 자그맣고 통통해가지고서는 제잘제잘 지저귀며 부산을 떠는 모습이 어찌나 귀여운지. S와 제비를 구경하면서 입 속으로 달달한 아이스큶을 한 스푼 떠넣으며 앉아 있으니 참 행복했다. 


한반도빵

대신 주문한 소프트 아이스크림


영월에는 청정지역에서만 사는 제비가 삽니다.

선돌은 소나기재 정상에서 서쪽으로 100m 지점에 높이 약 70m의 두 갈래로 갈라져 우뚝 솟아있는 기암괴석을 말한다. 우뚝 서 있다고 선돌(立石)이라고 한다. 한글이다. 영월 제6경이자 국가지정명승 제 76호로 지정되어 있다. 입장료 무료, 주차도 무료다.




영월은 산책 명소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가는 곳마다 산책로가 하나같이 아름답고 완만하며 깨끗하게 잘 정비되어 있었다. 이 길을 걷고 있는 내가 좋다.



선돌은 고생대 석회암에 발달한 수직의 갈라진 틈(절리)을 따라 암석이 부서져 내리면서 기둥 모양의 암석이 남아있게 된 것이다. 주변 하천의 침식작용으로 석회암이 깎여 수직의 절벽도 발달했다. 쪼개진 암벽 사이로 보이는 서강의 푸른 물줄기와 층암절벽이 어우러져 신비로운 느낌을 준다하여 신선암(神仙岩)이라고도 부른다. 영월은 유난히 신선과 관련된 지역명이 많은데 그만큼 경관이 수려하다는 의미인 것 같다. 선암도 그렇다. 그 모습이 농담을 조절하며 잘 그려낸 수묵화 같다. 그 앞을 흐르는 서강은 어찌나 고요한지 마치 거울과도 같아서 강물빛인가 했더니 하늘빛이었다. 강변에는 붉은 토양을 작게 구획을 나눠 밭이 일궈져 있고 장난감같은 작은 집들이 그림처럼 콕콕 얹어져 있었는데 이런 곳에서 텃밭을 가꾸며 살면 얼마나 행복할까 나도 모르게 상상하게 되어 한참을 내려다보고 서 있었다.

전망대에서 왼쪽 편으로 나 있는 길을 따라가면 선돌의 왼쪽 바위 위로도 올라가볼 수 있다. 그렇지만 나는 이곳에서 바라보는 풍경도 충분히 만족스러웠다(안 갔다는 얘기). 선돌을 바라보며 소원을 빌면 한가지씩은 꼭 이루어진다는 설화가 있다고 하는데 나는 서울에 와서야 이 사실을 알았다. 조금 늦었지만 사진을 바라보며 소원을 빌어본다.


국가지정명승 제 76호인 선돌